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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구 가볼만한 곳 ( 배꼽저장소& 박수근미술관)
    일상/여기어때 2021. 7. 18. 18:57



    오늘은 일진이 안좋은날. 가는곳마다 모두 문을 닫은날



    일요일 오전 브런치먹기위해 암것도 안먹고 인제에서 양구로
    갔는데 문이 닫혀있는게 아닌가! 일요일 휴무래요
    양구 브런치 카페 아인 53 다음에 다시오리라....


    도로가에 암것도 없지만 조용하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종류가 많으니 꼭 다시
    와야지



    두번째로 들린 양구 화산짬뽕도 휴무 ㅠㅜ
    여기도 일요일 휴무

    ( 설마설마 )
    그래서 시내로 나간 산채로 쌈밥정식집
    주차하고 들어가려니 잠겨있다.....
    여기도 휴 ! 무! 라! 니!

    젠장 이건 꿈일꺼야



    결국 모든걸 포기하고 바로 앞집에서 불백 정식 9.000원에 먹었다. 태능숯불갈비 여기도 괜찮아요 양도 많고 찌개+불백 한상차림

    인제에서 양구까지 왔는데 어디 갈때 없을까 검색하다
    양구 배꼽저장소 카페로 이동했다.
    빵이 맛있다니 후식으로 딱이지






    양구 배꼽 저장소 카페


    우선 공간이 넓어서 좋고, 빵도 맛있어요: ) 무엇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더 좋았어요~
    여긴 양구 핫플이지 않을까싶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른 박수근 미술관.
    입장료 3,000원
    입장료마저 예술작품이네
    주차장은 미술관 앞쪽 주차장에


    춘천 홍천 화천 양구 인제 사람 50% 할인!!! 된다니
    신분증 꼭 가져가세요ㅋ





    잠깐만, 박수근화백에 대해서
    입실하면 해설사선생님 박수근 화백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줍니다.
    유화작품[빨래터]는 2007년 서울 경매에서 45억 2000만원에 낙찰되어 국내 최고가를 기록하였고, 2013년 국내 미술경매 시장에서 호당(엽서 크기) 3억정도라고 말해주셨어요. 역시 알고 들으니 그림이 새롭게 보입니다. 3명의 여자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1명은 자기 아내, 박완서, 외국인여성( 박수근화백의 그림을 자주 샀던 사람)
    빨래터는 자신의 아내를 처음 만나 결혼을 까지 하게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ㅋㅋ 또한, 이건희회장가족이 기증해준 작품도 같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0942&docId=1098187&categoryId=34387

    박수근

    한국의 화가. 어렵고 고단한 시절을 힘겹게 살다간 대표적인 서민화가로 회백색의 화강암과 같은 독특한 마티에르와 단순한 검은 선의 기법으로 가난하고 소박한 서민들의 생활상을 화폭에 담

    terms.naver.com

    박수근 : 한국의 화가. 어렵고 고단한 시절을 힘겹게 살다간 대표적인 서민화가로 회백색의 화강암과 같은 독특한 마티에르와 단순한 검은 선의 기법으로 가난하고 소박한 서민들의 생활상을 화폭에 담았다. 대표작에 《빨래터》, 《나무와 두 여인》, 《아기 업은 소녀》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수근 [Park Sookeun, 朴壽根] (두산백과)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려는 꿈을 갖았다. 그는 양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상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18세 되던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 《봄이 오다》를 출품하여 입선했다. 이후 선전에서 여러 차례 수채화와 유화로 입선하고, 1953년 제2회 국전에서 《집》이 특선으로 선정되었다. 1955년 제7회 대한미협전에서는 《두 여인》으로 국회문교위원장상을 받았다.

    박수근은 어렵고 고달픈 시절을 힘겹게 살다간 대표적인 서민화가이다. 6.25 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 노동자로 일하거나, 미8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의 예술철학은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과 진실한 삶의 내면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시골집과 나무, 절구질하는 아낙네, 집을 지키는 노인, 아기 업은 소녀 등 서민적인 삶의 모습을 암벽에 음각하듯 화폭에 아로새겼다. 그의 작품은 초기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일관성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법 면에서 보면 1950년대 초까지는 대상을 검은 윤곽선으로 그리고 윤곽선 안쪽은 일률적인 색채로 처리해 화면 자체가 극히 평면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195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두껍게 쌓아올려진 색층을 통해 깊은 색조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마티에르는 서로 응고되면서 구조화 되어갔다. 만년의 작품에서는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단계에 돌입하여 마멸된 화강암의 표면을 보는 것 같은 거친 질감만이 남게 되었다. 기름기를 걸러낸 거칠거칠한 표면층은 우리 자연의 건조한 풍토와 연결되며, 또한 한 시대의 감정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박수근이 오늘날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서구의 화풍을 답습하던 당시의 한국 화단에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기법과 같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고, 그러한 독창성을 통해 한국인의 서민적 생활상과 정서를 집약적으로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유학파들처럼 모더니즘의 기표 위에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에서 그림의 소재를 불러냈으며, 삶의 지층을 다지듯 물감을 쌓고 굳히고 두텁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창출해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수근 [Park Sookeun, 朴壽根] (두산백과)


    다른 미술관으로 이동할 때마다 밖으로 나가야하는데 산책로가 잘 되어있었다. 근데 너무 더워
    날씨가 덥지않다면 산책하기에도 앉아있기에도
    좋은곳이였다.



    여기는 파빌리온

    박수근 화백작품이 움직이고 있어 입체감있게 느낄 수 있고 유일하게 사진을 맘껏찍을 수 있는곳이였다.
    작품속에 내가 들어갈 수 있어 너무 몽환적이였다.







    마지막은 어린이박물관

    누워서 영상도 볼 수 있고,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게 몇 개 있었다.



    박수근화백이 어린이동화만들었을때 그림인데
    옷과 모자를 쓰고 사진 찍을 수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 와도 좋은 미술관입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집에와서 여행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머물렀던 곳들이 다시 떠오르고
    미술관을 걷다 보게된 문장이 떠오른다.

    깊은 여운을 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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